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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역설 -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에포사 오조모, 캐런 딜론 지음/ 이경식 옮김/ 부키 펴냄
 
전국아파트신문   기사입력  2020/06/16 [12:42]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자 우물을 설치해준 각종 구호단체의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그들의 삶이 한층 나아질 거라는 기대와 그들을 가난에서 구제할 발판이 마련됐다는 희망이 부풀어오르며 괜시리 뿌듯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과 많이 다르다. 한 사례를 살펴보자. 에포사 오조모는 30만달러가 넘는 기금을 어렵게 모아 나이지리아의 다섯 곳에 우물을 설치했지만, 6개월 만에 우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현재 겨우 하나만 정상 작동한다. 이렇게 버려진 우물이 아프리카에 5만 개가 넘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버려진 우물…원조로는 가난 구제 못 해
신간 '번영의 역설'은 아프리카 저개발국가에 대한 공적 개발 원조(ODA)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시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원조가 지속돼왔는데도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이쯤이면 저개발국가 구제에 대한 접근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은 "가난의 해결책은 단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불편한 문제들을 해소하거나 제거하는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 우물 설치하기 등 눈에 보이는 가난의 징표들을 바로잡는 데 투자하는 방식의 해결책은 가난을 일시적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저소득 국가들의 열악한 인프라 개선에서부터 각종 제도 정비, 해외 원조 증대, 대외 무역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지만 결과는 우물 설치하기와 다를 바 없었다. 저자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은 여러 자원을 피폐한 지역으로 투입하기만 하면 가난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 전략은 가난을 만성 질환처럼 여기는 것이어서 고통은 다스릴 수 있을지언정 질병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1998년 모 이브라힘이 아프리카에 휴대전화 회사 셀텔을 창업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인프라조차 마련돼있지 않은 곳에서 그는 '편리함을 제공하겠다'는 신념 하에 사업을 강행했다. 그 결과 셀텔은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 수십억달러의 가치를 창출했다.
이처럼 지속적인 번영은 가난을 바로잡는 '전통 개발 기반 해결책'을 통해 찾아오지 않는다. 번영은 나라에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 즉 '시장 기반 해결책'에 투자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앞에서 제시한 첫번째 사례는 전통 개발 기반 해결책, 두번째 사례는 시장 기반 해결책을 각각 상징한다.

◆시장 창조, 인프라·제도·문화 변화 이끈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7일을 걸어야 하는 한 아프리카인을 보며 통신의 필요성, 즉 잠재적 수요를 발굴해 휴대폰 시장을 만들어준 것이 우물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더 주효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는 우리가 저소득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전통적으로 행해오던 원조나 개발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상의 힘겨운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면, 이 시장은 자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다른 요소, 즉 인프라와 교육과 제도 그리고 심지어 문화의 변화까지 자연스레 이끌어낸다. 이것이 한 사회의 진행 궤도가 바뀌도록 유도하는 제대로 된 해결책이다.
이러한 시장 창조 혁신은 세 가지 결실을 이끌어낸다. 첫째는 '수익'이고 둘째는 '일자리'이며 마지막은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문화 변화'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뭉쳐 성장의 굳건한 토대를 만든다.
시장을 창조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가 장기적인 번영을 누리려면 궁극적으로 혁신의 문화를 강화하고 지원하는 좋은 정부가 있어야 한다.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가들이 맨 처음 작은 불 하나를 붙이면 이를 거대한 불길로 키우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혁신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저자의 저서답게 이 책에는 이밖에도 혁신과 관련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가득하다. 미국과 일본, 한국이 혁신을 통해 번영에 이른 방식을 소개하며, 각종 혁신의 범주를 세 가지(지속성, 효율성, 시장 창조)로 나눠 유형화하기도 한다. 아울러 번영의 장벽으로 꼽히는 ▷제도의 결여 ▷ 부패 ▷인프라 우선주의에 대한 뼈 있는 통찰도 제시한다.
이 책은 매우 친절하다. 1장에서 두꺼운 책에 담긴 방대한 내용의 핵심만 요약해 요즘말로 제대로 '스포일러'를 해준다. 즉 1장만 읽어도 '왜 가난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총 12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모든 장마다 가장 앞 페이지에 요약글을 적어 놓아 예습할 수 있도록 했다. 472쪽, 1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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