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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왜 살인죄가 안 되나요?
 
이승호변호사   기사입력  2019/01/22 [11:20]

개인으로 보면 하나의 사건이 오랜 기간 동안 힘들게 하지만, 국가라는 큰 조직에서는 심각한 사건도 금새 다른 사건에 덮여 넘어가 버리고 만다.

 

동시다발로 일어난 계모의 학대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그에 대한 우리들의 반성과 대책이 만들어지기 전, 세월호라는 가슴 아픈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계모사건은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계모사건은 일반 국민의 감정과 법해석이라는 양자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왜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고 형량이 약한 상해치사죄로 기소하였느냐고 항의하였고, 이에 일부 법조인들조차 가세를 하자, 검찰에서도 마치 기소를 잘못한 것처럼 행동하는 바람에 사법의 불신을 더욱 초래하였다. 

 

국민의 입장에서 사법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우선 이해하여야 한다. 

사법부는 소극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에는 형법과 같이 어떤 행위를 하지 말라고 금지시키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처벌을 가하도록 규정하는 것이 있다. 문제는 어떠한 위반행위가 어떠한 규정에 해당하는가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더라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죽이면 살인죄, 죽일 마음이 없이 툭 밀었는데 죽었다면 폭행치사죄, 죽이겠다는 마음 없이 둘이 싸우다가 죽으면 상해치사죄, 사람이 기절하자 두고 가버렸는데 죽었다면 유기치사죄, 강도가 돈을 빼앗는 과정에서 사람이 죽으면 강도치사죄, 성폭행범이 성폭행 과정에서 사람을 죽이면 강간치사죄가 되는 등, 이에 따라 형량도 모두 다르게 된다.

 

범죄를 이루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를 두고도 죽이겠다는 의도가 있었느냐에 따라 위와 같이 여러 가지 죄명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라는 것을 무조건 범죄자의 뜻에 따른다면 범죄자는 모두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살인죄에 해당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행위나 객관적인 상황을 보고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 의도를 확정지어 버리게 된다.

 

예컨대 사업이 어려워 돈을 빌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사업은 부도가 나고, 빚만 잔뜩 남게 되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사기죄로 고소를 한다. 이 사람은 절대 사기 칠 생각으로 돈을 빌리지 않았고, 쓰러져 가는 사업을 일으킬 생각에 돈을 빌렸고, 사업이 회생하면 반드시 돈을 갚을 생각이었다. 과연 사기죄가 성립할 것인가? 

 

정답은 사기죄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러 범죄 중에 사기죄로 처벌받는 사람 중에 억울하다는 사람이 가장 많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는 바로 객관적인 상황을 통하여 범죄의사를 인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진짜 사기꾼에게 ‘당신이 사기칠 생각으로 돈을 빌렸느냐’고 물어도 사기꾼은 ‘아니오’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도 전체적인 행위나 객관적인 상황을 통하여 사기칠 생각을 추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돈을 빌릴 때 재산이 많았느냐? 부채가 많았느냐?’를 보고, 재산이 많았다면 사기 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인정되고, 부채가 많았다면 사기칠 생각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물론, 100%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기죄가 인정된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재산이 많았으면 돈을 빌리지도 않았다’. 돈을 빌려준 사람(억울함)과 빌린 사람(어쨋거나 피해를 입힘), 수사기관 사이의 부득이한 구조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서, 대구 칠곡 계모사건은 처음부터 검찰에서 상해치사죄로 기소하였고, 울산의 계모사건은 1차적(주위적)으로 살인죄를, 2차적(예비적)으로 상해치사죄로 기소하였다. 양쪽 모두 법원에서는 상해치사죄를 인정하였다. 국민들의 감정이 들끓는 가운데 법원에서 적잖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것은 위에서 본 것처럼 행위와 객관적인 상황의 해석에 따른 부득이함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한편으로 판사는 자신의 법률적 지식과 경험으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각자가 조금씩은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재판의 구조상 세 번의 재판이 가능하므로 그러한 법률의 적용이 적절하였는가는 앞으로 지켜보면 될 것이고, 중요한 점은 형량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죄는 법정형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되어 있고, 상해치사죄는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규정되어 있다. 유기징역은 ‘30년 이하’이므로 최대 30년까지 가능하고, 유기징역에 대해 형을 가중하는 경우에는 50년까지 가능하다. 실제로 살인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징역 5년이 선고되는 경우도 있고,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해치사죄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형량이 부여되면 국민의 감정은 어느 정도 누그러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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